생명의 샘터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라고 했는데 여호와와 하나님의 차이는 하나님은 일반 명사이고 여호와는 고유 명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신이신데 그분의 그 고유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1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2:4부터 아담 창조를 말씀하실 때 여호와라는 말씀을 쓰셨고, 모세를 만날 때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밝히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를 2번, 주를 3번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여호와라는 단어가 한 번도 안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나 여호와 대신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가장 깊은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오늘 본문에 주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목동으로 많은 양들을 관리(삼상16장)를 했습니다. 그는 경험적으로 사람들이 양이라면 하나님은 목자와 같은 분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오늘의 시편은 대단히 아름다운 목가적인 풍경을 느낄 뿐만 아니라 더 깊이 보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시고, 또 미래에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친히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시며 양을 위해 죽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너무너무 깊고 오묘한 가장 짧고 굵은 진리의 핵심을 모아놓은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주를 세 가지로 목자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1. 인도해 주시는 목자를 믿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1-3절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구원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이끌어가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를 통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양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양은 혼자서는 못 삽니다. 양의 치명적인 단점이 시력이 약합니다. 멀리 볼 수가 없습니다. 방향을 잘 못 보기 때문에 졸졸 따라만 다녀야 합니다. 중동지역은 양들이 목동을 따라 가는 길이 산에 가로로 나 있습니다. 목동이 앞서서 가면 줄을 맞춰서 양들이 따라 가다보니 길이 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양들의 원천적인 삶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는 나의 목자시니 목자가 가는 길로만 따라가면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은 동물 중에서도 가장 약하고 겁이 많아 무서운 짐승이 나타나면 이리저리 피하다가 물려 죽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목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에게는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 목자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역경의 인생길을 가는데 우리는 사탄 앞에서 너무 연약한 자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목자이심을 믿고 순종해 가야 한다는 것이 구원의 조건인 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만나 절대적으로 믿고, 복음이 주는 생명의 길을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2절에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하셨습니다. 양은 필수적으로 푸른 초장의 풀과 물을 먹어야 사는 것처럼 바로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인 복음의 진리와 성령의 생수를 주셔서 풍성한 구원의 길로 완벽하게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절에 보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했습니다. 주의 양은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의 소생(슈브-회복)이고 그 길이 바로 의의 길이고 그 길을 인도하실 분은 희생의 사랑을 주신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성령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의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2. 보호해 주시는 목자를 사랑하고 맡기라는 것입니다. 4절
목자가 양을 위해 좋은 목초지를 찾으려면 때로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기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무서운 짐승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자기 목숨을 내놔서라도 그 양을 지키기 때문에 그 사랑을 알기 때문에 양도 생명 전폭을 맡기고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그때부터 종교 생활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야 되기 때문에 종교 생활은 고행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 희생의 사랑을 주신 주님을 우리도 사랑하므로 주께께 맡기고 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따르는 믿음이 확실하다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언제든지 나를 위해 역사해 주시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체험했다면 나의 모든 것 다 맡기고, 내 자아까지도 내려놔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내 자아를 부인할 수 있을 때 안위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안위(安慰평안할안,위로할위)는 “나함”으로 “안심하다, 안식하다” 라는 말입니다.
3. 복을 주시는 목자를 소망하고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5-6절
하나님이 그 원수를 쳐내시고, 우리에게 최후 승리의 상을 주시고, 최후의 영광의 그 기름을 발라주시고 축복의 잔을 넘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여기까지 가야 제대로 목자를 따라가서 승리한 것입니다. 원수의 목전이란 말은 최후 심판을 받고 멸망당하는 사탄이 보는 앞에서 끝까지 잘 싸워 이겼다는 승리의 상을 주시고, 내게 하나님이 부으시는 영광의 기름 부음을 받고, 넘치도록 주시는 축복의 그 잔을 받는 것이 구원의 완성인 것입니다. 6절에 “내 평생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렇게 선하시고 이렇게 인자하신 분이라는 걸 확신하는 이상 우리는 이 땅에 언제까지나 머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살 것이라는 소망밖에 다른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이 아무리 좋으면 뭐합니까? 내가 가고 싶고 정말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야 가는 것이지 사모함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그 나라를 주실 것을 믿고 소망하고 사모하고 그날을 꼭 맞이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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