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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을 경외해야하는가(시24:1-10)
2024.04.20 06:08
곽장준
조회수 : 186

오늘 시편도 다윗의 시인데 많은 학자들은 이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모셔서 성막에 안치하는 때를 배경으로 썼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는 주로 절기 때 많이 불렀을 것으로 추정을 하는데 다윗이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거룩한 절기행사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사울 시대에 법궤를 빼앗겨 블레셋의 우상 성전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신들이 넘어지고 부서지므로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이는 여호와 때문이라 생각하고 법궤를 이스라엘 경계로 보내버려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계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것이 평생소원이었기 때문에 드디어 법궤를 모시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가르쳐 주신대로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반드시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모셔야 되는데 새 수레에 실어서 소가 끌게 했다가 수레가 흔들리는 바람에 웃사 라는 사람이 붙잡았는데 즉사를 했습니다. 다윗은 두려워서 에돔 오벳이라는 곳에 두고 한 동안 모시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제대로 깨닫고 드디어 예루살렘 성막에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법궤를 모시는 과정에서 영안이 열려 더 깊은 계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법궤를 모시는 마음은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며 뿐만 아니라 더 심오한 것까지 깨달았는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계시를 깨닫고 기록을 한 것입니다. 또 영계에 있는 영원한 하늘 보좌까지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신앙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면서 또 하늘 보좌에 앉아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창조하셨으며 또 어떻게 구원을 완성시키시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창조의 주권자시기 때문입니다. 1-2

 

창조의 세계를 말하고 있는데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은 우리가 거처하고 있는 지구를 말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충만하게 채워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식물과 동물들이 자랄 산과 들도 있고 갖가지 필요한 여건들을 다 만들어 놓으셨기에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물 없으면 못 삽니다. 도시는 바다와 강이 있는 지역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도 나일강 하류와 지중해변에 세웠고, 또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유브라데 강과 페르시아만 해변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나라도 한강과 서해변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했습니다. 그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라면 그분의 소유임을 알고 하나님 경외하며 살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계의 사람들이 과연 이 세계가 하나님 것이고 우리는 은혜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창조의 주권자시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올바른 사람이 되고 올바른 역사가 만들어질 것을 믿습니다.

 

2. 하나님은 거룩한 구원자시기 때문입니다. 3-6

 

선언하기를 여호와가 계시는 곳은 거룩한 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자만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는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자는 하나님 앞에 못 나간다는 것입니다. 손이 깨끗하다는 말은 행위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말은 마음의 사상이 옳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사탄에 의해서 죄 짓고 타락하고 저주를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마음이 허탄하고 거짓되다는 것입니다. 사탄에게 속아서 모두 거짓되었기에 하나님께도 거짓 맹세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6절에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받아들여서 5절에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했습니다. 의롭다 칭하시고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5-6절은 바로 구원의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또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그것이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회개의 제단을 쌓으므로 죄를 용서받고 다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 우리가 구원받고 복을 받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3 하나님은 영원한 통치자시기 때문입니다. 7-10

 

이 말씀은 9절에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성막 문을 열고 법궤를 모실 때 그의 영안의 문이 열리고 하늘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8절에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이 말은 하나님만이 진정한 심판자이시며 통치자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쟁은 하나님의 보좌에 좌정하셔서 악의 근원이 되는 사탄을 심판하시고 사탄을 따르는 모든 악한 자들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절에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고백한 것입니다. 만군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영원한 영광의 왕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지금 예루살렘 성에 모시려고 하는 그 법궤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있지만 그의 영안이 열리자 영원한 문을 열어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시도록 그리고 만군과 만유를 통치하시도록 해야 한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주권자가 하늘 성전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신 줄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장차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영원한 통치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깨닫고, 창조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신 거룩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